[11] 행성 과학 두번째 수업

2020. 8. 8. 09:44Writings/Stories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어느 학교. 행성 과학 과목 기초 수업 시간. 오티는 빼고 두번째 수업 시간**

 

여러분들도 알다 싶이, 우리가 사는 땅을 비춰주는 천체는 흑천, 백천, 녹천 이렇게 세 개가 있어요. 각 해를 지칭할 때 쓰기도 하고, 그 해가 떠 있는 시기를 지칭하는 말로도 쓰이지요.

 

지금 떠 있는 해는 뭐죠? 네 흑천이에요.

 

흑천은 강한 파장을 일으켜 우리별의 인접한 표면에 있는 모든 인공 전자 기기를 마비시켜요. 네,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시기인 것 알고 있어요. (웃음)

 

이 파장은 전파만 방해하는 게 아니라 그걸 발신, 수신하는 전자 기기에도 영향을 줘요. 그래서 유선으로 연결된 인터넷이나 티비도 못쓰고, 전기를 자원으로 가동되는 모든 기계품의 작동을 방해해요. 생활이 전반적으로 답답해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흑천은 미약한 열만좀 내고 빛은 거의 내지 않아요. 이 점은 야외 전체와 실내에 횟불을 켜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고요. 통신과 이동이 불편한 점을 빼면 다른 시기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게, 온도도 적당하고요. 

 

***

 

흑천이 지나가고 나면, 백천이 와요. 네, 해가 지나치게 강한 광선을 방사해서 보호 안경 없이 밖에 나가면 큰일 나는 때가 이 때에요. 강한 열 때문에 날씨가 가장 더워지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백천이 시작하는 초반에는 견딜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지표면 온도가 올라가서 백천 후반에는 모든 일반인들은 자가 격리를 시작하고, 지하 아고라가 열리지요. 여기에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대신 모여서 교류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우리 행성의 놀거리 절반은 지상에, 절반은 지하에 있다고들 하죠. 아, 눈이 반짝이는 학생 몇명이 보이네요. 적당히들 놀아요 적당히. (웃음)

 

백천이 뜨면, 흑천 때 멈춰있었던 각지의 발전소들이 다시 가동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노는 동안 하루종일 내리 쬐는 빛과 열을 열심히 저장하지요. 이 시기가 있어 우리 별이 다른 자원 없이도 행성 전체가 사용할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는 거에요. 

 

***

 

백천 다음은..? 네, 녹천이에요. 

 

녹천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천체인데, 자체적으로 빛을 낸다기보다는 겉면이 주변의 빛을 매우 잘 반사하는 점액질인 것으로 추정돼요. 백천보다는 어둡지만, 흑천보다는 전체적으로 날이 밝은 편이고요. 문제는 이 행성이 가진 중력이 너무 약해서, 표면의 유해한 점액질이 자꾸 우리가 사는 지표면으로 떨어져 내린다는 점이에요. 

 

이 물질에 닿으면 빠른 시간 내 피부가 변색, 부식돼요.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물질이죠. 다행히 흡수되는 성질은 없어서 갈라진 틈이 없는 고체라면 무리없이 막을 수 있어요. 보호 장갑을 끼고 만지는 것도 가능하죠. 3학년이 되면 여러분도 보호 장비를 입고 녹천 점액질을 직접 체험하러 밖에 나가볼 거에요. 

 

우리 행성 사람들은 백천과 녹천 때문에 고대부터 동굴을 많이 이용했어요. 당시 사람들 기술로는 지하 촌락을 만들기가 어려웠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만이 유일하게 위험한 야외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후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지하 건축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야외는 물, 공기, 에너지를 비롯한 자원을 얻는 곳, 지하는 비교적 안전한 인공 공간이 된 거에요. 우리 문명이 지상과 지하 동시에 걸쳐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죠. 

 

에너지를 얻기 위한 발전소들이 작동하는 시간도 뜨는 각 시기에 따라 정해져요. 흑천일 때는 작동 자체가 안되니, 휴식하고, 백천일 때 가동을 시작해서 녹천이 끝날 때까지 저장된 에너지를 소비하지요. 지하 도시도 흑천일 때는 가동이 불가능해서 문을 닫고, 백천 후반부부터 녹천 내내 열려 있고요. 

 

자, 이 정도면 우리 행성에 큰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천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난 것 같네요. 뭐, 기본적인 내용이니 어려운 건 없었죠?

 

다음 시간에는 우리 행성에 살고 있는 식물을 위주로 알아볼 거에요. 생의 절반은 지하로 피신해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과 달리, 식물들은 발이 없어요. 그래서 변하는 날씨에도 생존할 수 있게 진화한 종들만 남았죠. 어떤 방법으로 혹독한 환경 변화를 견뎌내는지 살펴보기로 해요. 

 

내일 부터는 백천 시작이네요. 인터넷 쓸 수 있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보호 안경 잊지 말고 꼭꼭 챙겨서 오세요, 그럼 다음 시간에 봐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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