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주로 간 수학 여행

2020. 8. 8. 09:41Writings/Stories

무작정 우주로 간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엔진 소리가 나고 지구가 멀어져도 별 생각이 안들었다. 애초에 어딜 가든 딱히 감흥을 못 느끼는 성격이기도 하고.

 

근 하루 정도 지났을까.. 그 긴 시간 동안 바깥 풍경은 그저 깜깜할 뿐 무엇하나 보이질 않았다. 우주선은 왜 이렇게 조명이 어두컴컴하지? 에너지를 아껴써야 하는건가? 대충 무엇이든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집중해서 어떤 작업을 하기엔 눈이 피곤한 조도였다. 대충 보드게임을 굴리며 지루해할 무렵 창밖으로 아주 가깝게 행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멀리서 다수의 동그란 행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갈색, 연빨강, 노랑 등 따뜻한 계열의 색깔 행성들이었다. 왜일까, 갑자기 지구에서 아주 멀리 왔다는 것이 실감되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통솔하는 우리반 애들, 이 무리를 벗어나 우주에 떨어져버리면 나는 다시는 내가 살던 환경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들과 꼭 붙는 것이 생존이다. 지구에서는 이런 불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딜 가든 돈만 있으면 숙소 잡고 엄마한테 연락하면 됐으니까. 

 

창문에 딱 붙어 밖을 구경하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곧 흥미를 잃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계속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우주 공간, 행성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선생님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왜 갑자기 행성이 나타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애들이랑 이야기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중간에 끼어들어 주제를 바꾸고 싶지도 않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화를 기다리고 싶지도 않아..

 

앞으로 여정은 어떻게 될까, 지구로 다시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아마 다 계획이 있겠지? 나는 그냥 수학 여행을 온 반 학생 중 한명일 뿐..

 

창밖 풍경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깜깜한 밤에서 뿌옇게 밝은 구름 같은 게 보이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착륙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학생들 한두명 씩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착륙하는 것 맞겠지? 

 

직접 밖에 나가보니 창밖으로 보던 뿌연 밝음과는 좀 달랐다. 뭐랄까, 공간 전체가 마치 연한 파장으로 꽉 차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고장난 티비처럼 지직거리는 선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곡선으로 넘실거리는 무지개가 사방에 펼쳐진 것 같기도 하고, 쉴새 없이 움직여서 꼭 지구의 빠른 모래 바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정체를 모르는 그것은 내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혹시 우리에게 해로운 건 아닐까, 방사선 같은 것도 몸에 안좋다는데, 정체 모를 행성의 정체 모를 파장, 게다가 눈에 이렇게 보이기까지 하는데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왜 선생님과 다른 애들은 저렇게 편안해 보이는지. 선생님은 정말 내 목숨을 맡길 수 있는 걸까?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파장에 정신이 없는 가운데, 저 멀리서 흐릿한 인영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설마 사람은 아니겠지? 외계 생명체? 나는 주변에 반 애들과 선생님이 가까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게 걸어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게 눈앞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형상은 나 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반대편의 나는 소름끼치게도 살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런 문명도 없을 것 같은 이런 외딴 행성에 사람과 똑같은 생명체가 살고 있을리고 없고, 나랑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그것은 나한테 몇 미터 떨어진 채로 서서 더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가능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것이 저기에 존재할 수 있는 건 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디테일까지 같을 수가 없다. 내가 여기 온 것이 저것의 존재에 영향을 미쳤다..?

 

무지개색으로 넘실거리는 하늘을 멍하니 보던 나는 불현듯, 누가 답을 알려주기라도 한듯, 그 정체를 깨달았다. 이 행성, 공중에 퍼진 이 파장 전체가 사람의 정신을 읽고 있구나. 저 형상은 내 마음을 읽고 내 모습을 카피한 것이구나. 온 사방에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스캐너가 깔린 셈이었다.

 

행성 전체가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어떤 규칙대로, 또는 무작위로 움직이고 있는 것 뿐일까? 

 

어느 새 나와 똑같이 생긴 그 형상이 가까이 다가와 자기 손으로 내 손을 건드렸다. 손을 잡아 달라는 걸까? 이 곳에 오래있으면 오래있을 수록 아무런 활동 없이도 이 행성을 더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혹시 내 마음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 같은 걸 실시간으로 주입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도..? 

 

이곳은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는 곳이구나, 하고 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정신에 침투할 수 있었고, 그러자마자 물질로 이루어진 내 복사체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구나. 정신에서 물질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바뀌는 것이 가능하구나 이곳은.

 

곧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아무런 생명체도 없어보이는 이런 행성에 고등 생명체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걸까? 이 생각은 곧 그럴듯한 답으로 이어졌는데, 그 생명체가 물질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을 뿐,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고, 언제든지 형태 변환이 가능한데, 지금 이 순간에 꼭 물질체로 존재하란 법이 있는가?

 

이들이 분리된 여러 개체들일까? 이렇게 내 정신을 읽고 또 정신을 통해 답을 주는 것 같은 환경에서, 그 개체들은 서로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거나, 아예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환경이 왜 이 물리적 행성에만 묶여 있는 걸까? 왜 행성의 바깥은, 우주에 떠있던 우주선은, 내가 살던 지구는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왜 내가 서 있는 이 행성의 단단한 땅 마저 정신체로 만들어버리지 않는 걸까? 왜 이 행성 자체를 카피해버리지 않는 걸까?

 

질문할 때마다 마음 속 어디에선가 자꾸 떠오르던 답변은 이 의문에서 갑자기 뚝 끊겼다. 더 이상 아무런 영감도 주지 않았다.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같은 풍경.. 다양한 색으로 지직거리며 진동하는 선... 예쁘기도 한데, 계속 보고 있으니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내 형상은 그저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손을 잡아줄까, 싶었지만 눈도 깜빡이지 않고 멈춰있는 모습이 왠지 소름이 끼쳐 그만두기로 했다. 

 

어라, 행성 전체가 좀 어두워진 진 것 같다. 살짝 갈색을 띄는 하늘로 바뀌어 이제 정말 모래 바람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왠지 빠르게 움직이던 사방의 파장이 아까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고, 왠지 모르게 공기가 무거워진 느낌이다. 좀더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자꾸 이 행성에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근처에 우주선이 보였다. 저건.. 

 

옆에 있는 내 형상이 이번엔 스스로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눈도 한번 깜빡였다. 

 

더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라는 분리된 자아, 개체성이 사라지고 이 행성의 일부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잡힌 손을 뿌리치고 우주선 방향으로 달렸다. 내 복사체는 아무런 표정도 띄우지 않고 멀어져가는 나를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

 

-아 실패했네

 

오늘도 먹잇감을 놓쳤다. 행성의 풍경이 짙은 남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행성-거대정신체>는 꾸준하게 우주에 교란 파장을 퍼뜨려 지나가는 개체 상태의 고등 정신체를 이 행성에 착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수학 여행을 떠나던 우주선이 원래 도착 지점이 아니었던 이 행성에 착륙한 것. 파리 지옥 같은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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