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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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햇살비빔밥
오늘은 해가 쨍쨍하네.. 무슨 요리를 만들어볼까..? 파란 크리스탈로 된 그릇을 옥상에 가져다 두었다. 삼십 분쯤 지나자 눈부신 햇살이 그릇에 절반정도 모였다. 부엌이 살짝 그늘져 있어서 앞마당에서 나머지 재료를 섞기로 했다. 모인 햇살은 그늘에 두면 금방 흩어져 버리니까. 냉장고에 얼음 당근이랑 불당근이 남아 있다. 날이 더우니 열감이 덜한 얼음 당근을 채썰어 넣고.. 꼬마 새우도 데쳐놓는다. 양파는 싫어하니까 빼고. 어라, 냉동실에 엘쿨루스의 눈물 결정이 있네. 언제 사놨지? 전복보다 훨씬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다. 효능을 찾아보니 일시적으로 직관력이 향상된다는 말도 있고.. 일단 아까우니까 겉면만 칼로 살살 긁어서 나온 부스러기를 그릇에 털어 넣었다. 또 뭘 섞지..? 햇살에 색감과 맛을 더해줄 무지..
2020.09.08 -
[22] A
A는 앞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을 진행시킬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나에게도 임무를 내린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딱히 생각할 필요 없이 A가 내리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A를 도와 내게 맡겨진 일을 다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A는 대신 내 주변의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 내가 사는 곳, 먹는 것, 즐기는 것, 내 생활은 A가 제공해준 것들을 기반으로 되어 있다. A가 준 일만 수행하면서, 나는 A가 제공한 환경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간다. 가끔 A의 명령을 어길 때도 있다. A는 내 행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그저 내 기분을 조종해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거나 짜증, 분노가 일게 하는 정도다. 그런데도 계속 내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제공해줬던 환경을 하나씩 빼..
2020.09.07 -
[21] White Fool's City
친구랑 이야기하며 쓴 것 2018년 12월 1일 오전 2:39, 회원님 : 소녀가잇엇어 2018년 12월 1일 오전 2:40, 회원님 : 소녀주변의꽃은 다 줄기까지하얗게표백돼잇는데 2018년 12월 1일 오전 2:40, 회원님 : 왤까? 아물론 색깔만그렂지 꽃자체는 싱싱 2018년 12월 1일 오전 2:41, 회원님 : 이유는.. 소녀는 더러운걸 만질수가없기때문이야 2018년 12월 1일 오전 2:42, 회원님 : 완벽하게깨끗한것만 만질수잇어 2018년 12월 1일 오전 2:42, 회원님 : 역시 대화하니 생각이잘나 2018년 12월 1일 오전 2:43, 회원님 : 태어난그대로의 순수함을 잃으면 소녀도 그대로 자기 알레르기반응으로 사망 2018년 12월 1일 오전 2:53, 쏭🍒 : 해결할 방법은 없는거..
2020.09.03 -
[20] 초인과 범인
2년 전 카톡으로 쓴 걸 저장해뒀었네 2018년 12월 3일 오전 2:06, 회원님 : 사회가 초인과 그렇지 않은자로 나뉘는 세상 2018년 12월 3일 오전 2:06, 회원님 :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강한 초능력을 갖기위해 발버둥친다 2018년 12월 3일 오전 2:06, 회원님 : 범인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2018년 12월 3일 오전 2:07, 회원님 : 초능력은 유전되기에 2018년 12월 3일 오전 2:07, 회원님 : 어느 순간 자기에게서 초능력의 미미한 잠재력을 발견하지만 2018년 12월 3일 오전 2:07, 회원님 :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덮어놓고 산다 2018년 12월 3일 오전 2:08, 회원님 : 오히려 범인들사이에서 성적이 낮다 2018년 12월 3일 오전 2:08, 회..
2020.09.03 -
[19]소리알2
이 소리알들이 생성될 때, 각각 알에는 조금씩 다른 소리들이 무작위로 저장된다. 어떤 알에는 목소리가 많이 들어있는 반면, 어떤 알에는 베이스 사운드가, 어떤 알에는 하이 피치의 소리만 들어가 있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음악이 어울리는 화음들이 시간에 따라 쭉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알에서 나오는 소리도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보관이나 이동중에 너무 흔들리는 경우 안에 들어 있는 소리들이 섞여서 알을 깼을 때 듣기 그리 듣기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가지고 있는 소리알 중 두 개는 작곡하는 친구에게 빠른 소포로 부쳤다. 그 친구 왈, 내가 듣는 음악에는 독특한 사운드나 화음이 많아서 이렇게 보내주면 창작에 도움이 된다나. 나머지 세 개는 감정사에게 들고 갔다. 알을 깨지 않..
2020.09.03 -
[17]소리알
머리 위로 손을 한번 빙 휘두르면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해서 음악을 켠다. 자동으로 별별별파이 앱이 켜진다. 스피커를 거실 천장 네 모서리에 아래로 살짝 내려오도록 달아놨다. 서라운드 뭐시기던가, 행복 지수를 몇 배는 올려주는 것 같다. 네 모서리에서 나오는 음악이 거실 한가운데서 뭉친다. 저번주에 소리를 만질 수 있는 특수 장갑을 사놨던 것 같은데... 아 서랍에 몇 쌍 있네. 야구 수비수의 장갑처럼 뭉툭하게 큰 장갑이다. 한정판 핑크색이 하나 남아있다. 뭉쳐서 뱅글뱅글 공중을 도는 음악을 꽉 손으로 눌러 뭉치로 만들었다. 일단 열두 알 정도 만들고 여섯 알은 나중에 쓰려고 냉동실에 넣어뒀다. 나머지 여섯 알은 오늘 가지고 나가볼까.
2020.08.27